2011년 3월 9일 수요일

The Selfish Gene by Richard Dawkins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The Selfish Gene


때는 1999년.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으로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CD를 샀다. 제목은 "Parasite Eve".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DNA가 폭주해서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과 "리처드 도킨스"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이때였다.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즐긴 게임이었고, 게임 스토리와 게임 전반에 깔려있는 생물학, 동물학에 대한 토막지식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일본어 원문을 수작업으로 입력하고 다시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따로 "번역집"을 직접 만드는 중일 만큼 한때 열중한 그런 작품이었다. 이 게임의 원작은 1995년쯤에 일본인가 어딘가에서 발표된 동명 소설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에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원작 소설의 이미지를 게임으로 옮기는데 대성공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런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게임의 맨 처음 오프닝에 나오는 첫번째 문자열이 이런 것이다.


Parasite Eve Opening 中 / SquareSoft USA

"遺傳子は自分の子孫を多く殘す事のみを考える" - リチャ-ド.ド-キンス
"유전자는 자신의 자손을 많이 남기려고 한다." - 리처드 도킨스


그런데 이 게임의 원작 소설을 만든 근간이 되는 저서 The Selfish Gene(이기적인 유전자)의 137쪽에 "하나의 이기적인 유전자는 무엇을 하려고 애쓰는가?" "유전자 풀에서 숫자를 늘리려고 애쓴다." 라는 말이 분명히 나오고 있다. 일본어와의 번역 차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히 일치하는 말이다.


3년이 지난 지금도 틈틈히 이 게임을 다시 해보면서 게임 스토리와 유전학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취미삼아 쌓아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1992년에 나온 한국어판 The Selfish Gene을 입수해서 드디어 원작을 읽어보았다. 사실 읽고 싶은 책은 그 이후에 나온 신간이지만 7200원이나 주고 새 책을 살 생각은 없다...(인터넷에서나 그렇지 정가는 9000원이나 한다. 책값이 아까운게 아니고 결국 똑같은 내용의 책을 또 살 필요는 없으니까... --;)


리처드 도킨스 아저씨는 개인적으로 다윈 영감님을 최고의 과학자로 생각한다. 나도 그 비슷하게 생각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다윈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뭐니뭐니 해도 "적자생존(適者生存)". 어렸을 때에는 "적이 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인줄 알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겨우 "적합한 자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도태된다"는 선택적인 진화론을 함축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자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이 더 적합하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진화 자체와는 거리가 먼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도킨스 이전에 다윈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생물은 진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도킨스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수없이 이 책에서 반복되어 말한 것과 같이 "유전자는 진화할 수밖에 없으며 얌체처럼 이기적인 놈들이 특히 더 잘 진화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미남과 추녀가 결혼해서 애를 낳았을 때 애가 괜찮게 생기면 꼭 미남에게 "자네 유전자의 승리를 축하하네" 하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독신자 기숙사" 9권 참조 : 정정. 11권 참조) 자식은 내 유전자의 승계물이기도 하다.


독신자 기숙사 11권 194~195p / (주)서울문화사 / 小学館 / Kubonouchi Eisaku
독신자 기숙사 11권 196~197p / (주)서울문화사 / 小学館 / Kubonouchi Eisaku


우리는 음식을 먹고 살고 계속 움직이며 수많은 인풋과 아웃풋을 거쳐 열심히 살아서 결국 뭘 하나? 기껏 자식 낳고 사는게 전부다. 좀 나은 사람의 부류라면 뭔가 하나씩 남겨서 "이것은 훗날 역사가 되리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잘해야 내 유전자의 흔적을 여기저기에 남기는 정도다. 그나마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경우에는 잘해봐야 한두건 성공한다. 표현이 매우 비인도적이고 비상식적이긴 하지만 리처드 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다는 거다. 여기서 Gene이라는 녀석과 meme이라는 녀석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개념이 나온다.


그럼 왜 인간은 그런 소박한 목표를 꿈꾸며 살아가는 것일까? 도킨스 아저씨에 의하면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란다. 설계는 누가 했나? 설계자는 없다. 선택적으로 남은 유전자가 모여서 새로운 유전자로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A로 모이면 침팬지가 되고 B로 모이면 사람이 된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그 유사성이 매우 높다고 하지 않은가? 심지어는 인간의 언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똘똘한 침팬지도 있다고 할 정도다.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또 뭔가? 유전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별로 없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90% 정도가 일치한다고 하니까 잘 쓰지도 않는 정크 유전자를 제외하면 아마 거의 같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도 참 유치한 생명체다. 어쩌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빨간눈 원숭이나 걸리는 AIDS 따위를 세상에 들여놓지를 않나...


AIDS는 어떻게 인간에게 감염되게 되었는가? 예를 들어 내가 남잔데 국내 첫 AIDS 감염자라고 치자.


나는 이태원에서 외국인 여성 티나를 꼬셔서 불타는 밤을 보냈다.
티나는 한국에 오기 전 고향에서 남편 다니엘과 불타는 밤을 보내며 살았다.
다니엘은 외국에 자주 나가는 무역상인데 외국에 수많은 현지처를 두고 살았다.
다니엘의 현지처는 따로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며 다니엘 없을때는 불타는 밤을 보낸다.
다니엘의 현지처가 따로 마음에 둔 사람은 노예처럼 부리는 시종이 있으며, 대체로 원주민이다. 추가로, 원주민은 미개하고 뭘 잘 모른다.
다니엘의 현지처가 따로 마음에 둔 사람은(지겹다 그냥 A라고 하자) 매우 밝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원주민에게까지 마수를 뻗쳤다...
원주민은 미개하고 뭘 잘 모르기떄문에 아무거나 잘 덥친다...
원주민은 빨간눈 원숭이를 잘 덥친다...
빨간눈 원숭이는 지병인 AIDS를 앓고 있었다... 인간 기준으로 치자면 그냥 감기다...


결론.
빨간눈 원숭이는 감기에 걸렸다.
원주민은 빨간눈 원숭이 감기에 걸렸다.
그동네 원주민들이 빨간눈 원숭이 감기에 걸렸다.
A도 빨간눈 원숭이 감기에 걸렸다.
다니엘 현지처도 빨간눈 원숭이 감기에 걸렸다.
다니엘도 빨간눈 원숭이 감기에 걸렸다.
티나도 빨간눈 원숭이 감기에 걸렸다.
나도 빨간눈 원숭이 감기에 걸렸다.
뉴스에서 "빨간눈 원숭이 감기"는 AIDS라는 것이며, 좀 얄구진 방법들로 감염된다고 한다.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인류의 재앙이다.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도태된 유전자의 그릇(빨간눈 원숭이)과 나름대로 선택받았다고 착각하는 유전자의 그릇(인간)을 합치려는 시도를 함부로 하면 이렇게 된다.


유전자가 아니라 외관상 인간과 그 외의 영장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맨 처음 무엇이었을까? 원숭이 세계에는 이발소가 없다. 내버려두고 털만 잘 골라주면 장땡이다. 그런데 그 원숭이 세계에서 웬 녀석이 뛰쳐다니는데 두개골 위로 시꺼먼 털이 길게 늘어져있다. 장발족이다. 엄마 원숭이가 자식에게 가르치길 "저런 장발족과는 놀지 말아라". 그 장발족들은 장발족끼리 같이 놀게 되었고, 그 장발족의 모임이 현재의 인간이다. 이것은 그냥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유전자가 장발족의 모임을 원했기 때문에 그쪽 방향으로 진화해 간 것이고, 그와 구분되는 원숭이의 유전자는 장발족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자식에게 장발족이랑 놀지 말라고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Gene이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치면 인간과 원숭이가 다른게 뭐냐? 고작 유전자 10%? 그것만 가지고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여기서 새로이 등장하는 가설적인 개념이 리처드 도킨스 아저씨의 "meme"이라는 것이다.


Meme(밈 이라고 읽는단다)은 쉽게 말하면 "문화"다. 사람이 죽으면 남길 수 있는 두가지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유전자를 남기거나 좀 나은 부류의 사람들처럼 유전자가 아니라 "역사"를 남긴다거나 할 수 있다. 나처럼 이렇게 멋진 글을 남긴다거나. ^^; 그럼 인간이 meme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도킨스 아저씨는 저서의 마지막에서 말한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복제자의 폭정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담배를 피운다. 꼴초다. 그러나 나의 유전자는 담배는 유전자를 담는 그릇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피우지 않는게 좋다고 폐암이나 기관지암, 식도암, 설암, 간기능 저하, 혈액순환 저하, 심장박동 상승, 기억력 저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사인을 한다. (정력 저하도 포함 --;) 그래도 나는 담배를 피운다. 왜? 유전자를 담는 그릇(육체)에는 별로 좋지 않을 지라도 meme에는 좋기 때문이다. 나는 유전자를 담는 그릇을 깎아먹으면서 meme을 담는 그릇을 더욱 튼실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유전자는 스스로를 유지하고 진화시키기 위해서 나라는 그릇을 만들어냈지만 나라는 그릇이 만들어내는 meme에게 배신당하고 만다. 어쩌면 gene은 meme에게 배신당할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meme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그릇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점? 원숭이는 gene이 우선이다. 물론 원숭이에게도 meme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meme을 위해서 gene의 명령을 거역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gene을 가진 생명체 중에서 meme을 가지고 있으며, meme을 위해서는 gene을 희생할 황당한 각오도 되어있는 생명체군이다.


물론 도킨스 아저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점잖은 표현을 했다. 매우 많은 이타주의에 대한 예를 통해서 "인간은 meme을 통해 gene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다른 생물과 구분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절대 담배같은 하찮은 것으로는 예를 들지도 않았다.


나는 담배를 피운다. 비록 gene의 그릇은 조금씩 파괴될 지라도 두뇌의 비타민이라 불리우는 담배로 인해 더욱 왕성한 meme의 복제를 추구할 수 있으며, 이미 주변에 내 meme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여럿 보고 있다. 주변사람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담배를 피운 gene의 희생으로 다른 meme을 복제해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내 meme은 gene보다 한발 빨리 복제되어 퍼지고 있다.


gene의 수준에서 머물 것인가, meme의 수준까지 생각할 것인가? 당신이 진정 인간이라면 gene의 수준에서 머물기에는 그 gene의 그릇이 너무 방대하고 아깝지 않은가? gene을 뛰어넘는 meme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 지구 위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meme을 창조하고 복제하기 위해 뿌듯한 마음으로 담배 한테 피워야겠다.
 - EOF -


2006년 2월 16일에 작성한 문서인 것 같습니다.
하도 오래 돼서 언제 만든 문서인지도 헷갈리는군요.